중국에서 모택동주석의 사망 이후 수정주의자들이 권력을 찬탈하고 난 뒤 지금까지 다시 자본주의로 회귀하는 반혁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제의 자본주의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론적 영역 역시 부르주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철학 영역에서 진행된 결과가 "실천적 유물론" 입니다. 실천적 유물론과 이른바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결합은, 지식인 계층을 이용하려는 수정주의자들의 좋은 도구가 되고있는 상태입니다.
오늘날 중국 마르크스주의 학계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이론이 "실천적 유물론" 입니다. 실천적 유물론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실천적 유물론은 사람과 세계(자연과 사회)의 관계에 관해서는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는 '외부 세계', 즉 사람보다 앞서는 자연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거나 무의미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세계가 인간 활동, 실천, 주제에 달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라 이론 체계의 내용에 있어서 실천적 유물론 이론은 외부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외부 세계를 포함하거나 연구하지 않습니다. 실천적 유물론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인식론적 철학이 아니라 실천적 이해와 인간 존재방식, 생존활동의 의미에 기초한 실천철학임을 강조했다. (黄书进의 "물질적 본질의 일원론" 참조)"
이렇듯 실천적 유물론이란 소련에서 "탈스탈린"화 이후에, 특히 고르바쵸프 시기 팽배했던 휴머니즘적 이상주의가 중국에서 발현된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천적 유물론"의 가장 큰 반마르크스주의적 특성은 바로 계급투쟁을 배제하는 실천만을 주제로 삼으며 단지 마르크스주의를 순전히 윤리적이고 주관적이며 계급투쟁에 관여하지 않는 공허한 휴머니즘적 찬미로 변절시켜버린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지적 유희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계급투쟁에서 노동계급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혁명의 올바른 진로를 개척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계급투쟁으로부터 분리한다는것은 마르크스주의를 각종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일부로 전략시켜버리는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실천적 유물론을 설파하는 각종 이데올로거들이 수정주의화로 인해 비참한 신세가 된 노동계급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고 남한에서 자칭 진보적 학자 행세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저 자신의 높은 지식수준을 뽐내기 위해서 온갖가지 어려운 말들을 덧붙히며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행태는, "실천적 유물론"이 반혁명을 정당화하기위한 부르주아적 사상이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실천적 유물론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는 매 순간마다 실천을 통해서 개량되고 있다고, 즉 모든 종류의 실천의 특수성이 마르크스주의를 정의하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실천적 유물론의 계급적 특성과 비과학성이 분명하게 들어납니다. 객관적인 모순과 이에 따른 투쟁을 은폐시키고 기회주의 노선을 관철하는데 있어 실천적 유물론은 강력한 지지를 제공해줍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객관적 세계에 대한 과학과 분리시키는 행태에 대해서는 매흠님을 비판할때 자세히 언급하였기에, 간략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렇듯 실천적 유물론은 수정주의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부르주아적 사상이론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를 자칭하는 각종 수정주의 이론들의 본질을 파악하는것이 중요하며, 이 글 역시 각종 수정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수정주의 조류를 철저히 비판, 배격하고 맑스-레닌주의의 기치를 철저히 들고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