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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 유언장에 대한 진실

Choco1917 2023. 9. 23. 00:04

https://www.revolutionarydemocracy.org/rdv7n1/LenTest.htm
이 글을 요약,번역한 글입니다.


레닌 유언장에 대한 위조


아래의 것은 흔히 "스탈린에 반대하는 레닌의 최후의 유언"으로 알려진 글입니다.


'중앙위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서기장이 된 스탈린 동지는 그의 손에 무제한의 권릭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가 항상 충분히 주의하면서 그 권력을 사용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트로츠키 동지는 통신인민위원회 문제에 관해 중앙위원회에 맞서 투쟁한 것이 이미 입증되었듯이 뛰어난 능력을 지녔습니다. 그는 아마도 개인적으로 현재 중앙위원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친 자기 확신을 나타냈고 업무의 순전히 행정적인 측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922년 12월 25일
(VI Lenin: Collected Works , Vol. 36, Moscow, 1971, pp. 594-95).


스탈린은 너무 무례하며 이러한 결점은 비록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서로 함께 일하는데 있어서는 꽤 용인될 수 있지만 서기장에게는 용납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동지들에게 스탈린을 그 직위에서 제거하고 그 대신 다른 모든 측면에서 스탈린 동지보다 더 한 가지 장점을 가지고있는, 즉 더 관대하고 더 충성스럽다는 장점을 가진 다른 사람을 임명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무시할 수 있는 세부 사항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분열에 대한 보호 장치의 관점에서 그리고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관계에 대해 위에서 쓴 내용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세부 사항이 아니거나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질 수 있는 세부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1923년 1월 4일
(VI Lenin: Collected Works , Vol. 36, Moscow, 1971, pp. 596).






소위 이 편지들은 레닌의 것이 아닙니다.

이 문서들은 타자기로 입력됬습니다. VI 레닌은 이 문서나 서한 중 어느 것에도 서명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타자된 텍스트 아래의 서명은 'AM.V' 또는 'LF' 입니다.(레닌의 서명이 아님) 이는 사인이나 레닌의 서명된 사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이 문서의 저자가 레닌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적이 없습니다. 이 편지들이 VI 레닌에 의해 저작되었다는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는 JV 스탈린 자신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레닌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CPSU(소련공산당) 지도부에 남아 있던 수정주의자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문서'가 '음모'의 일부였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서술할 레닌의 유언에 대한 VA Sakharov의 분석은 위 문서가 VI 레닌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것이 아닌 이 편지가 실제로 VI Lenin의 저작물에 속하는 일련의 작품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증하는 것으로 설계되있습니다.

VA Sakharov는 문서와 모든 자료의 가능한 모든 아카이브를 연구했으며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위 '유언' 분석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적용됩니다.

레닌의 저작은 아래와 같은 2가지 분류로 나뉘어집니다.

(1) 레닌이 저자라는 것이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 없이 완전하게 드러났다.

(2) 어떠한 과학적 수단으로도 레닌이 저자임을 증명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레닌이 저자인것이 확실한 레닌의 저작들에선 반스탈린 사상이나 표현이 없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VI 레닌의 '유언'(즉, 레닌이 진짜로 저자인지 확실하지 않음)의 부분에서 반스탈린주의로 가득 차 있고 정치적으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동기가 있다는 점에서 레닌이 저자인것이 확실한 레닌의 저작들과 이 "유언"은 정반대입니다.



'유언'

실제로 '유언'에서 레닌이 쓴것이 확실한 부분은 아래의 기사들과 같습니다.

그의 '일일 일기 약속 페이지';
'라브크린을 어떻게 재조직해야 하는가',
'더 적지만 더 좋다',
'우리 혁명에 대하여'.

위 문서들 중 일부는 레닌(V.I. Lenin)이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 문서들의 텍스트 또는 개별 단계에 대한 작업은 레닌의 비서들에 의해 다른 문서에 기록되었습니다. 날짜 또한 정치국(Politburo) 문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진위를 확인합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V.I. 레닌이 이 문서들에 작업하거나 그 작업이 끝난 후 레닌이 아직 그 작업을 감독할 수 있는 상태일 때, 그의 존재가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문서들은 여러 곳에서 합쳐지며, 레닌 비서단에 의해 작업이 완료된 후 레닌이 그들을 최종적으로 검토하거나 중앙 위원회 내에서 논의가 진행 중일 때 참고로 사용하기 위해 받았던 문서들에 의해 확인됩니다. 이러한 내부 문서들은 서로 모순되거나 지도부 내의 여러 인물들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 문서들에는 발전된 아이디어가 있지만 다른 레닌의 저작들과의 관점과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문서들은 V.I. 레닌이 제시한 다른 지시 사항과 상반되지 않습니다. 이 문서들 내외부적으로 일관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탈린에 대한 공격

레닌의 유언장이라고 알려진 문서들에서 레닌이 쓴것이 아닌 문서들(스탈린을 공격하는 내용이 담긴)과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VI 레닌의 구술'이라고 쓰여 있는 특징적인 메모가 보입니다. 이것은 1922년 12월 24-25일과 1923년 1월 4일에 발생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JV 스탈린에 대한 공격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습니다.

(2) 소위 '국적이나 '자치'의 문제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3) 1923년 3월 5~6일에 (트로츠키, 음디바니, 마하라제에게) 그들과의 연대 성명과 함께 '구술'된 정치적 서신입니다.

(4) 레닌과 스탈린 사이의 '개인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협박'에 관해 JV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기사입니다.

위의 모든 문서는 레닌 자신이 저자가 아니며 레닌이 이 편지를 썼다는 것을 외부에서 목격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이 조작된 문서에 대한 정보를(당시 공산당원들이) 어디서 얻었고 어떻게 이것이 퍼졌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분석은 다음을 통해 확인됩니다.

(1) VI 레닌의 소위 '비서의 일일 일기'와

(2) 이 문서를 CPSU 중앙위원회 전체에 전달한 사람.

이 두 가지 점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무국의 '일기'(일지,기록지라고 번역하는것도 가능)는 가장 주목할만한 문서로, 지금까지 한 번도 의문의 여지가 있었던 문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무국의 '일기'는 과학적, 역사적 세부적으로 조사된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쓸모가 없었는데, 1922년 12월 18일 이후 이 '일기'가 레닌 사무국의 일상 업무에 대한 문서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정치적,이론적인 목적을 위해 조작된 문서이고 거짓입니다.

1922년 12월 18~22일 레닌의 병이 시작되면서 레닌은 자신의 일에서 벗어났습니다. 불행히도 그 기간 동안 그의 사무국은 사실상 기능을 중단했으며 사무국의 일일 일기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얼마지나서 사무국의 일기가 다시 기록되는데, 이때부터의 레닌이 이전까지 하던 주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 기록됩니다.

'사무국의 일기(일지)'에는 비어 있는 페이지가 많았고, 표기는 불규칙하게만 기록됬습니다. 일부 표기가 있는 페이지 사이에는 이 기간 동안 비어 있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이로써 '유언'의 조작자들은 비어 있는 페이지를 채울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날짜표기의 기적

사무국의 "일기"와 레닌의 의사들이 작성한 문서 사이에서  세부 사항, 날짜 및 기타 표기법에 관해 매우 많은 불일치가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사무국 일기'의 비서(작성자)들은  12월 25일, 29일, 31일, 1월 1~4일, 10일, 13일, 16~27일, 그리고 2월 18일 -20, 25-27, 그 다음 3월 2일, 3일 동안의 레닌의 작업에 대해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던 반면, 의사들은 12월 25일, 29일, 31일, 1월 1~4일, 10일, 13일, 16~27일, 그리고 2월 18일 -20, 25-27, 그 다음 3월 2일, 3일에 레닌이 사무국에서 작업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의사의 기록와 비서의 기록에서  20일 간의 불일치가 발견됩니다.

반대 방향의 예도 있습니다. VI 레닌이 사무국에서 비서들과 함께 일하지 않고 병으로 누워있었을 때 – 비서들은 VI 레닌으로부터 누술을 받아썼다고 기록했습니다! 1월 24~26일, 2월 3일, 9일, 10일, 12일, 14일. 이것은 의사들의 기록과 상충되는 또 다른 8일입니다. 72일 중 28일이 서로 일치하지 않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사건을 매일 기록하는 사무국'일기'를 상상해 보세요!

사무국의 비서들이 조작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8일의 '의심스러운 날짜'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매우 흥미롭습니다. 레닌의 유언과 JV 스탈린에 대한 레닌의 비판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시기입니다.



트로츠키

트로츠키,부하린과 같은 혁명의 적들은 조작된 레닌의 유언을 근거로 자신들이 진정한 레닌주의자라며 레닌의 권위에 호소했지만, 이는 레닌의 실재 입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비공개적으로, 그것도 '구술'의 형태로 비밀스럽게 의견을 전하는 방식은 레닌이 고수해 온 정치적 방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며 당시 레닌은 당의 지도자로써 자신이 적절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제안을 당에 공개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한 당의 생명이나 혁명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에 대한 결정을 미래의 결정 시기인 당 대회에서 연기하라는 '유언'의 내용은 비논리적입니다. 레닌이 사망한 후에 그러한 연기된 회의가 언제 열릴지는 불확실했습니다. 위독한 레닌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도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예는 '유언'문서가 진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유언'의 저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봅시다. 누가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레닌 유언' 전설의 저자는 트로츠키, 포티에바, 지노비에프, 부하린입니다. 그들은 VI 레닌이 실제로 사망하기 훨씬 전에 이 텍스트를 정치 분야에 '삽입'했습니다. 그들은 레닌이 더 이상 자료를 쓰거나 지시하거나 읽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JV 스탈린에 대항하는 정치적 투쟁 방법으로 이 문서를 썼습니다. 트로츠키는 비서 중 한 명인 포티에바(Fotieva)의 도움을 받아 소위 '국적이나 자치의 문제에 관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에 의한 이러한 책략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련 국가가 당 제12차 대회에서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회에서 그들은 '레닌의 저서'에 기초하여 대회에서 막 채택된 소련을 해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들이 레닌의 유언을 근거로 들며 소련의 건국을 막으려('유언'의 내용 중에는 레닌이 이때까지 민족,자치 문제에 대해 보였던 입장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내용을 근거삼아 혁명의 적들은 소련의 건국을 막으려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러한 요소들은 새로 형성된 소련을 해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혁명의 적들)과의 싸움은 JV 스탈린이 주도했습니다. VI 레닌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기사'가 트로츠키에 의해 배포되고 '일기'에 등록되도록 VI 레닌 사무국에 전달된 것은 바로 소련 건국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기였습니다!



레닌은 스탈린을 지지하고, 트로츠키에 반대했다

거짓 '유언'의 정치적 사상을 분석해 보면,  레닌이 이론적 주도적 역할을 했던 당 중앙위원회에서 일어나고 있던 정치적 투쟁을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현실은 JV 스탈린이 자신을 서기장으로 임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 제11차 대회에서 JV 스탈린이 사무총장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고 있던 VI 레닌이었습니다.

VI 레닌은 스탈린이 사무총장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문서, 편지 또는 제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레닌은 그의 연설이나 조언, 논평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레닌의 '유언'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습니다.

레닌은 일국사회주의에 대해 좋은 입장을 보았고, 트로츠키는 영구 혁명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반복했습니다(1922년 1월과 11월). 레닌은 당과 정부의 궁극적인 통합을 촉진하는 반면, 트로츠키는 이에 반대하며 축소를 제안했다. 레닌은 노동자농민감사관의 재조직을 주장한 반면, 트로츠키는 이를 청산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레닌은 전문가 위원회로서 고스플란을 꽃피우기 위한 것이고, 트로츠키는 이를 작전 계획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레닌과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닌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정치적 동맹자인 스탈린을 인신공격하고, 최고위 자리를 자신의 맹렬한 적수인 트로츠키에게 가져가야 한다고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 견해를 전혀 상식적으로 수용할 수 없습니다.



결론

레닌이 유언이라고 알려진 기사, 편지 또는 기타 문서의 저자가 아니라는 수많은 근거가 있습니다. 레닌의 가르침에서 이러한 위조가 제거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적 수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레닌의 유언을 당시 정치 생활의 맥락에서, 1921~1922년에 레닌이 트로츠키에 맞서 벌인 정치적 투쟁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투쟁은 레닌의 투쟁 노선을 장려하고 따르는 그의 충성스러운 동맹자인 스탈린과 함께 레닌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스탈린은 레닌이 죽은 후 트로츠키와의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그의 어깨에 짊어졌습니다. '유언'의 조작된 부분은 트로츠키와 그의 그룹에 반대하는 당 중앙위원회 내부의 투쟁이라는 맥락에서 훨씬 더 넓은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반레닌주의적인 이 투쟁에서 지노비예프가 육성하고 장려한 이 투쟁은 스탈린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결합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이 두 그룹의 전체 계획은 VI 레닌의 권위의 도움을 받아 스탈린을 지도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러시아 공산당(B)의 정치적 진로를 반동적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